[이동통신 경쟁 '판'을 바꾸자]〈1〉'차별' 합리화를 許하라

[이동통신 경쟁 '판'을 바꾸자]〈1〉'차별' 합리화를 許하라

2000년 총선거 이후 정치권은 각종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냈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는 선거 때마다 한 번도 제외되지 않았다. 지방선거 때도 이통 요금 인하를 당 차원에서 내놓는다.

정치권은 이통 요금에 대한 몰이해와 왜곡된 시선으로 각종 규제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이통 서비스 시장의 기술 경쟁과 마케팅 경쟁이라는 '시장 자율 기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통사 간 경쟁을 통한 요금을 인하한 사례는 거의 없다. 정치권에서 내세운 요금 인위 인하에 대한 이용자 체감 효과도 미미하다.

대한민국도 이제 권력과 규제에 의한 임시 처방이 아니라 '경쟁'이라는 본연의 논리로 요금을 인하하고, 궁극으로는 이용자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의 이통 요금 인하 '한건주의'를 차단하는 한편 저렴한 요금 상품 출시 경쟁을 촉진시키고 이용자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이통 시장의 경쟁 활성화 혁신 방안을 5회에 걸쳐 제안한다.

〈1〉'차별' 합리화를 '許'하라

미국 이통사 스프린트는 보름 동안 '버라이즌 바가지는 이제 그만(Stop feeling ripped-off by verizon)'이라는 파격 이벤트를 열었다. 버라이즌 가입자가 스프린트로 번호 이동을 하면 2년 약정 조건으로 1년 동안 데이터·통화·문자 무제한 제공을 약속했다. 1년 이후에도 2회선을 결합하면 월 40달러, 3회선을 결합하면 월 30달러에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다.

이에 앞서 3위 티모바일은 버라이즌 가입자가 번호 이동을 하면 잔여할부금을 완전 대납하는 프로모션을 내세웠다. 버라이즌도 가만있지 않았다. 월 80달러이던 롱텀에벌루션(LTE) 데이터 무제한 요금을 70달러로 인하했다. 경쟁사를 겨냥한 공격과 방어 등 사업자 간 시장 경쟁으로 미국 가계통신비 지출은 불과 1년 만에 13% 감소했다.

특정 고객에게 파격 혜택을 제공하는 이 같은 시도는 '형평성' 획일화를 주문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당장 고객 차별이라는 비난은 물론 규제가 뒤따른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특정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하려다 불발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인가 또는 승인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통사의 '자기 검열'로 시도조차 하지 못한 아이디어는 더 많다.

중고폰 보상 프로그램이 대표 사례다. 이통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직후 3사는 18개월 이후 반납 조건으로 단말 가격을 선 할인하는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그러나 규제 당국이 '선 할인' 지원금 차별 지원 등을 지적하며 3개월여 만에 중단됐다. 특정 고객이 아닌 모든 고객에게 균등한 혜택을 제공하지 못한 게 주된 이유다.

차별 요금제를 통한 차별 합리화를 허용하고 파괴성 혁신이 잇따르는 미국 사례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통사는 차별 합리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통사 간 차별 없는 요금제도 이통 시장의 고질병으로 꼽힌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현재와 같은 규제 환경에서는 인가 받은 요금제로 이통 3사의 요금제가 수렴, 경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이통사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통 요금은 마치 3사가 담합이라도 한 듯 유사하다. 이통사가 차별화보다 '미투'에 치중하는 측면도 있지만 규제 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4년 LG유플러스가 망 내외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자 SK텔레콤과 KT가 하루 간격으로 유사 요금제를 출시했다. 2015년에는 SK텔레콤이 유·무선 통화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하자 열흘 만에 LG유플러스와 KT가 동일한 요금제를 내놓았다. 같은 해에 KT가 데이터중심요금제를 내놓자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뒤따랐다.

이 밖에도 군인요금제, 가족요금제 등 특정 이통사가 출시하면 경쟁사가 비슷한 상품을 우후죽순 출시했다. 이통사는 몇 개월 동안 치밀한 분석과 철저한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설계한 아이디어임에도 차별 요금제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이다.

이통사는 금융과 보험처럼 혁신 요금제에 대해 일정 기간 보호하면 새로운 요금제를 다양하게 추가 출시할 수밖에 없고, 이용자의 선택권과 혜택을 확대하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대안도 내놓았다.

이통사 고위 관계자는 “통신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파괴성 혁신이 일어나고, 이어 연쇄 반응이 잇따를 것”이라면서 “시장 자율 경쟁을 유도해야 통신비 인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