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세진 ‘바이 아메리칸’…바이든도 ‘미국 우선주의’

2021.01.26 21:31 입력 2021.01.26 22:46 수정 이윤정 기자

연방정부 ‘미국 상품 우선 구매’ 규정 강화한 행정명령 서명
교역국들, WTO 위배 주시…트럼프 때와 규모 등에선 차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상품 구매)’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방정부가 미국 제품을 우선 구매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존의 ‘바이 아메리칸’ 법률 규정을 강화한 것이다. 미국인이 낸 세금을 미국 제조업에 투자하겠다는 의도지만 ‘미국산’ 구매를 기반시설과 친환경에너지 사업,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지출에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교역국들은 ‘미국 우선주의’가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25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에 관련 고위직을 신설했다고 보도했다. 행정명령은 연방 기관이 수입 제품을 구매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정부 조달규정을 강화했다. 미국 중소기업이 정부 계약 입찰에 필요한 정보에 더 잘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연방 기관이 부득이하게 외국 제품을 구매할 때는 OMB 책임자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한 해 연방정부가 구입하는 6000억달러(약 661조원)어치 상품·서비스의 3분의 1 정도에 이번 행정명령이 적용된다. 또 ‘바이 아메리칸’의 일환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정부기관이 사용하는 차량을 모두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로 교체할 계획이다. CNBC는 “미국 내에서 미국산 부품으로 완성차까지 생산하는 자동차 업체는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닛산 자동차 등 세 곳뿐”이라면서 “관용차를 모두 전기차로 바꾸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 전 연설에서 “제조업, 노조, 중산층 등 미국 중추를 재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며 “미국 제조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민주주의의 무기였고, 현재 미국 번영의 엔진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밝혔다. 1933년 대공황 때 미국 정부에 미국산 제품만을 쓰도록 했던 ‘바이 아메리칸’법의 배경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미국 정부는 이 나라의 부가 아닌, 노동에 보상할 것”이라며 “이런 미래를 보장하는 핵심 원칙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바이 아메리칸’을 주장했지만 그의 재임 시절 해외 기업들이 따낸 연방정부 계약이 30% 급증하는 등 문제가 더 악화됐다”면서 “현행 법령의 허점을 보완해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전 공약으로 사회기반시설 건설, 친환경에너지 사업 등에 4000억달러(약 442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 서비스 조달을 내세운 바 있다.

미국 제조업계는 환영했지만 교역국들은 트럼프 정부가 외쳤던 ‘미국 우선주의’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마크 가노 캐나다 외교부 장관은 캐나다 CBC 인터뷰에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강하게 얽힌 공급사슬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게리 후프바우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교역국들은 이번 행정명령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되는 사항이 있는지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은 바이든 정부가 내세운 다자주의 회복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바이든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전임 행정부와 규모·강도 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통상 관행을 경제 침략으로 규정하고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일방적 제재를 가해왔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교역국에 일방적 제재를 가하기보다 바이 아메리칸 규정을 구체화해 교역국과의 마찰을 줄이겠다고 밝히는 등 상호 존중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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